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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조소프라노 윤현주는 서울대 음대를 전체 수석입학했고 수석졸업과 함께 서울대총장상,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했다.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마친 후 도미하여 미국의 맨해튼 음대에서 장학생으로 박사학위를 받아 맨해튼 음대 첫 여성 성악박사 및 첫 외국인성악박사로 기록됐다. 서울대 재학시 동아음악콩쿠르에 입상했고 졸업과 동시에 국립오페라단에서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 롤라 역으로 데뷔하면서 뛰어난 성악가로서의 가능성을 인정 받았다. 맨해튼 음대 유 학 중 조지 시크에게 발탁되어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 케루비노 역으로 미국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코시판 투테>, <성녀 수산나>, <비밀> 등의 오페라의 주역으로 활동하는 한편 링컨센터, 카네기홀 등을 비롯한 수많은 콘서트무대에 솔리스트로 초청되어 연주 활동을 하였다. 또한 미국 전역의 초청 독창회, 독일 실내악회 초청 뮌헨 독창회 등 폭넓은 리사이틀 활동을 했다. 1992년 귀국 이후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국립오페라단, 서울시오페라단 등에서 <에프게니 오네긴>, <호프만의 이야기> 등의 오페라에 출연하는 한편, 독창회 및 콘서트 무대에서 끊임없이 학구적인 레퍼토리를 연구, 발표했고, 예술가곡 전문 아티스트이자 교육자로서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크리스토프 마이어는 뮌헨의 루트비히 막시밀리안대학교에서 1981년부터 1985년까지 연극과 음악학을 전공하였다. 이후 만하임 국립극장 스태프 프로듀서와 쾰른 오페라 스태프 프로듀서, 예술 행정 부서장으로 재직했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리세우 대극장의 예술 제작 감독으로 재직했고 2004년부터 2006년까지는 스위스 바젤극장의 오페라 디렉터로 일했다. 2007년 1월부터 2008년 7월까지는 라이프치히의 오페라 디렉터로 임시 극장장과 함께 극장을 이끌었고 2009년부터 뒤셀도르프 극장의 극장장을 맡고 있다. 자르브뤼켄 극장, 바르셀로나 리세 우 대극장,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라이프치히 오페라극장, 베네치아 라페니체극장, 몽펠리에 오페라극장, 도쿄 극장 등 세계 여러 지역의 오페라극장에서 다양한 오페라 제작에 참여했다. 2004년부터 CPDO(Chambre Professionell des Directeurs d'Opéra) 멤버인 그는 오스트리아 빈 벨베데레 콩쿠르(2001~2012년), 독일 드레스덴 오페라하우스 주최 국제성악콩쿠르(2004~2009년) 등 국제성악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초빙되었으며 2011년 5월부터 독일 뒤셀도르프 로베르트 슈만 국립음대의 명예교수직을 맡고 있다.

제라르 모르티에는 1943년 12월 25일 벨기에 겐트에서 출생했다. 가톨릭 신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법학과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플랑드르 페스티벌의 대표가 된 뒤 1970년대의 대부분을 독일에서 보냈으며 뒤셀도르프, 함부르크, 프랑크푸르트 오페라의 예술감독으로 재직했고 이후 파리국립오페라의 프로그램 구성 기술 자문으로 일했다. 1981년에는 브뤼셀의 몬네오페라하우스의 극장장으로 임명됐다. 레퍼토리의 혁신적인 각색, 새로운 작품 소개, 새로운 연주자 발굴을 통해 오페라 하우스를 혁신했다. 1992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운영을 책임지게 된 그는 한때 가장 전통적이었던 오페라 페스티벌을 급격하고 도발적으로 변모시켰다며 비평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다. 2001년에는 2002~2004 시즌 동안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 무용, 오페라, 심포니, 연극을 선보이는 루르트리에날레를 이끌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2001년 말에는 파리국립오페라단 단장, 2010년에는 레알 마드리드 극장의 극장장이 되었다. 안트베르펜과 잘츠부르크대학교에서 각각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01년부터 2002년까지 베를린 학술원의 초빙 교수로 초청되었다. 그는 벨기에 겐트와 네덜란드 레이던에서 연극의 정치사와 사회사를 가르쳤다.

소프라노 박정원은 화려하면서도 난도가 높은 고음역의 소리를 시원하고 안정감 있게 소화해 낼 수 있는 성악가로 손꼽힌다. 미국 뉴욕의 줄리아드음악원 출신으로, 마담버터플라이콩쿠르 입상, 볼티모어 오페라콩쿠르 푸치니상 수상, 미국 오페라 아메리카의 ‘올해의 유망신인상’ 수상, 메트로폴리탄오페라 동부지구 결승 입상 등의 수상경력을 가졌다. 세계 최대의 매니지먼트사인 컬럼비아 아티스트 매니지먼트(CAMI)사에 스카우트 되어 미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캐나다, 일본 등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바스티유 오페라, 스폴레토 페스티벌, 마이애미 오페라, 생루이스 오페라, 오페라 코믹, 테아트르 데 부프 뒤 노르, 일본 세이부 극장 등 외국 저명 오페라단에서 주역으로 공연했으며, 국내에서는 KBS 교향악단, 서울시립교향악단,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등 국내 유수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무대를 가졌다. 현재 한양대 음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88년에 빈국립오페라극장의 궁정가수로 선정되었으며, 1977년 이후 취리히 오페라하우스의 영구 단원이 되었다. 국립음악원에서 이르마 곤살레스, 에리카 쿠바세크를 사사했고 1974년에 뮌헨ARD국제콩쿠르에서 수상한 후 뮌헨국립음대에서 리하르트 홀름 교수와 에리크 베르바 교수를 사사했다. 1980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지휘로 <마술피리> 음반을 녹음하고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데뷔 무대를 가졌으며 카를 뵘의 지휘로 뮌헨에서 <후궁 탈출>의 벨몬트로 출연했으며, 1983년 빈에서 장피에르 포넬이 연출한 <마농>에 데 그뤼로 데뷔했다. 1991년 모차르트 서거 200주년을 기념한 뉴욕메트로폴리탄오페라의 <마술피리>,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황제 티투스의 자비>를 콜린 데이비스 경의 지휘로 녹음하였다. 1990년 베네치아 라페니체극장에서 크리스티안 틸레만 지휘로 바그너의 <로엔그린>에 출연했고, 1993년 뉴욕메트로폴리탄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발터 폰 스톨칭 역(오토 솅크 연출, 제임스 레바인 지휘)을 맡아 무대에 올랐다. 2011년 7월에는 그의 국제 경력 40주년을 기념하여, 멕시코 국립문화예술위원회가 예술 금훈장을 수여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슈투트가르트 휴고 볼프 아카데미의 예술 감독으로 재직했으며 젊은 성악가들에게 독일 가곡을 전하는 노이에 마이스터 리드쿤스트 협회를 설립했다.

이치하라 다로는 도쿄대에서 공부했고 1981년 이탈리아 로마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의 조르조 파바레토를 사사했다. 니키카이 컴퍼니의 마스네 오페라 <베르테르>에서 주역을 따내면서 도쿄에서 오페라 데뷔 무대를 가졌다. 1982년 포르투갈 리스본 산 카를로스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푸치니의 <투란도트>에서 칼라프 역을 맡아 국제 무대에 데뷔했고 1984년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한 베르디의 <맥베스>에서 말콤 역을 맡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공연했다. 뉴욕메트로폴리탄오페라에서 <가면무도회>, <리골레토>, <루치아>, <토스카>, <장미의 기사>의 주역을 맡았으며, 시카고 리릭 오페라, 밀라노 스칼라, 나폴리 산 카를로 극장, 토리노왕립극장, 독일 함부르크슈타츠오퍼, 쾰른슈타츠오퍼, 리옹국립오페라, 니스국립오페라, 오랑주 오페라 페스티벌, 아르헨티나 콜론극장 등에서 초청 공연을 했다. 2003년에는 NHK 음악페스티벌에서 리카르도 샤이 지휘로 밀라노 주세페 베르디 교향악단과 베르디 <레퀴엠>을 공연했다. 지휘자 게오르그 솔티 경, 주빈 메타, 로린 마젤 등과도 함께 공연해왔다.

주아일란은 리릭 소프라노로 필라델피아의 루치아노 파바로티 국제 성악 콩쿠르 오페라 부문의 최종 결선 진출자였으며, 셔터쿼SAI콩쿠르와 뉴욕 리더크란츠콩쿠르 등 국제콩쿠르에서 수상했다. 네덜란드 국립 투어링오페라에서 <나비부인> 초초상 역으로 데뷔하였으며 같은 역으로 런던 로열 앨버트 홀, 코네티컷 오페라, 올랜도 오페라, 오페라 캐롤라이나, 오스틴 리릭 오페라에서 공연했다. <파우스트>의 마르게리타 역으로 애틀랜타 오페라, 셔터쿼 오페라, 코네티컷 오페라, 버지니아 오페라, <라보엠> 미미 역으로 벤쿠버 오페라, 오스틴 리릭 오페라, 오페라 퍼시픽, 미시간오페라극장, 버지니아 오페라, <카르멘> 미카엘라 역 으로 코네티컷 오페라, 올랜도 오페라, 샌디에이고 오페라, <투란도트>의 류 역으로 오스틴 리릭 오페라와 샌디에이고 오페라, <안드레아 세니에>의 막달레나 역으로 오스틴 리릭 오페라, <오셀로> 데스데모나 역으로 코네티컷 오페라, 오스틴 리릭 오페라, <진주조개잡이>의 레일라 역으로 미네소타 오페라, 오페라 퍼시픽, 오페라 컴퍼니 필라델피아, 데이턴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역으로 오스틴 리릭 오페라, 보스턴 리릭 오페라, <리골레토>의 길다 역으로 오스틴 리릭 오페라, 캔자스시티 리릭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알마비바 백작부인 역으로 벤쿠버 오페라, 코네티컷 오페라와 활동했다. 영국 글라인드본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두 시즌 동안 <마술피리>의 파미나 역으로 출연했고 같은 작품으로 녹스빌 오페라단과 공연했다. 지난 시즌에는 <투란도트> 류 역으로, 샌디에이고 오페라와 <팔리아치> 네다 역으로 올랜도 오페라와 공연했다.

1983년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최현수는 1984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밀라노 베르디 국립음악원, 오시모 아카데미, 스칼라 가극장 오페라 아카데미, 카를로 베르곤치 아카데미를 모두 수석으로 졸업했다. 1986년 이탈리아 부세토 베르디국제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1위 입상을 했고 동시에 최고 바리톤상도 수상했다. 1990년 미국 단젤로 국제콩쿠르 1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국제콩쿠르 1위와 차이콥스키상, 파바로티국제콩쿠르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오페라 <리골레토>로 데뷔한 뒤 <가면 무도회>의 레나토, <라 트라비아타>의 제르몽, <에르나니>의 돈 카를로 역으로 무대에 섰고 뉴욕 시티 오페라,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필라델피아 오페라 외 미국의 많은 주요 오페라 무대에 주역으로 출연하였으며, 1992년 카네기홀 데뷔 독창회를 가졌다. 이탈리아,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캐나다, 호주, 일본, 필리핀 등 전세계 오페라와 리사이틀 무대에 올랐으며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레고리 헹켈은 시카고 드폴대학교에서 음악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뉴저지 프린스턴의 웨스트민스터 콰이어 칼리지를 최우등 졸업했고, 줄리아드음악원과 뉴잉글랜드 컨서버토리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음악 분야에서 전문적인 경력을 쌓기 전에는 뉴욕 모건스탠리의 프로젝트 매니지먼트팀에서 수년간 일했다. 뉴욕 출신인 그는 시카고리릭오페라단에서 협력 예술 행정가로 근무한 후 로스앤젤레스 오페라단의 예술 계획 매니저로 플라시도 도밍고와 제임스 콘론과 함께 일했으며 캐스팅, 콘서트 프로그래밍 등의 업무를 진행했다. 2008년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의 디렉터로 부 임하여 재직 중이다. 뉴욕메트로폴리탄오페라 그랜드파이널콘서트의 초청 심사위원으로 활동해왔으며, 미국 전역에서 진행되는 메트로폴리탄오페라 전국 오디션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몬타냐나의 조반니 마르티넬리-아우렐리아노 페르틸레 콩쿠르, 로마의 오타비오 지노 국제오페라공쿠르 등 세계 각지의 국제성악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초청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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